연말이 되면 베이 지역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연이 있다. Shen Yun.
그것은 바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나는 작년에 남편하고 친정 부모님 모시고 처음 봤는데
올해는 시어머니께서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에 베이 방문을 하셔서 다시 한번 가게 되었다.
한국도 그렇고 여러 나라에서 이맘때면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하는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도 그렇고 줄거리와 배경도 크리스마스 시즌과 찰떡이다.
우리가 예약한 공연은 12월 24일 오전 11시 공연.
아쉬운 점은 공연 캐스트 명단을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
미리미리 예매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당일 공연 때 어떤 무용수가 무슨 역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뭐 아주 라스트 미닛에 예매를 하면 캐스트 공개 후에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원하는 자리를 사수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누가 나오는지는 몰라도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예매를 하는 편이다.
가격은 남편이 자세히 말은 안 했지만 티켓당 $200.
근데 세 명...남편 통장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림.
내가 캐스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발레리나가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있기 때문!
"박원아"라는 발레리나인데 3년 전에 그녀의 백조의 호수를 보고 제대로 홀딱 반했다. 그래서 발레 보러 갈 기회가 생기면 꼭 그녀가 나오는 공연이길 바라고 가지만... 아쉽게도 매번 다른 무용수였다.
한국 발레리나가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라는 게 너무 멋있고 일단 그저 빛...
그래서 기회가 되면 또 직관해서 응원하고 싶다.
https://www.sfballet.org/the-company/artists/dancers/corps-de-ballet/
박원아 발레리나 외에도 최지현 발레리나 등 여러 한국 무용수들이 샌프란 발레단에 있다.
프로그램 북에 나오는 한국 이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이 먼 타지에서 다들 너무 멋지고 대단한 것 같다. 짝짝짝
아무튼.
12월은 우기라 하늘이 잿빛이다.
오늘도 회색으로 꽉막힌 하늘. 그래서 가끔 보이는 파란 하늘이 더 귀하다.
특히 캘리 살면 사계절 파란 하늘에 익숙해져서
파란색 중독자들처럼 몇 날며칠 회색 하늘이 이어지면 답답하고 기분도 꿀꿀해진다.
오늘도 파킹은 스팟 히어로를 통해 공연이 열리는 War Memorial Opera House에서 가까운 오페라 플라자에 예약을 했다.
발렛 주차비 $24.38
주차장에서 오페라 하우스까지 걸어서 5분 정도?
맞은편에는 이렇게 법원같이 생긴 시청이 있다.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양옆에는 다양한 클래식 음악 공연이 열리는 데이비스 심포니 홀과 헙스트 시어터가 있다.
자세히 보면 세 건물이 나란히 다 보임.
붙어있진 않지만 우리가 자주 가는 오르페움 극장도 걸을 만한 거리에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여긴 샌프란의 모든 문화 예술 공연의 중심지.
한 가지 흠이라면 그다지 안전하지 않은 시빅센터 (텐더로인) 한가운데라 저녁에 혼자 가는 건 비추.
그렇긴 해도 저녁 공연 후에는 극장 측에서 시빅센터 역까지 같이 걸어가 주는 무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물론 그룹으로.
그리고 일단 공연이 끝나면 다들 우르르 몰려다니기 때문에 인파와 함께 걸으면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은 듯.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인증샷.
내부는 어머님 말씀처럼 무슨 연말 시상식 하는 곳처럼 화려하고 우아하게 꾸며놨다.
사진이 다 못 담음. 일단 오페라 하우스 건물 자체가 굉장히 고풍스러운 정경을 자랑하기 때문에,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 왠지 다른 시대로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다들 무슨 무도회 오는 것처럼 엄청나게 빼입고 온다.
남자들은 정장, 여자들은 시상식 이브닝드레스를 입거나 아주 포멀한 드레스를 입고 오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편안한 복장으로 오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절반 이상 드레스나 정장차림으로 오는 듯.
호두까기 인형이라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가족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특히 예쁜 옷으로 머리까지 풀세팅 예쁘게 꾸미고 온다. 진짜 인형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다 ㅎㅎㅎ
나는 한국에서 발레를 본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 발레 보러 가려고 이브닝드레스 입는 건 못 들어본 것 같다.
문화 차이일지도?
어쨌든 우리는 이브닝드레스도 없거니와 정장은 불편해서 그냥 적당히 단정하게 입고 갔다.
우리가 앉은자리는 E109,107,105.
시야는 이렇다. 무대가 아주 잘 보인다.
공연 시작 전까지는 극장 내 바에서 스낵이나 샴페인을 가져와서 먹을 수 있다.
미국은 공연 문화가 조금 관대한 편인지, 외부 음식은 당연히 안 되지만 안에서 파는 건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
내 옆자리 앉은 여자분은 앉아서 샌드위치를 드셨음...
냄새가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불 꺼지기 전에 다 드셨다.
공연 중에 자꾸 부시럭거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오페라 하우스는 넓기 때문에 2층이나 3층에서 보는 것도 잘 보일 것 같다.
1층 뒷 좌석은 아무래도 미국 사람들이 체격이 큰 편이라 시야가 자주 가려지긴 하지만,
작년에는 꽤 뒤에서 앉았는데도 잘 보이는 편이었다. 불만 없었음.
런타임은 약 한 시간 반. 중간에 인터미션 10분 정도.
공연은 뭐 말해 뭐 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모든 씬이 눈과 귀가 즐거웠지만
특히 1막 마지막에 눈의 여왕과 요정들이 마차 타고 등장하는 씬은 소름이 돋을 정도..
90킬로 (200파운드) 상당의 눈을 뿌린다고 한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Sugar Plum Fairy (사탕 요정?)의 독무.
발레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아름다운 걸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크리스마스 전날 공연에 가면 공연이 끝난 후 오케스트라의 크리스마스 캐롤 연주를 들을 수 있다.
12월 24일 공연만 하는지 아니면 시즌 내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24일 공연엔 무조건 한다.
그러니 공연 끝난 후에 나가지 말고 오케스트라 있는 쪽으로 전진하는 걸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qDVQTgZd2hA
이렇게 SF발레단 오케스트라의 캐롤 연주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다들 들뜨고 신난 표정 ㅎㅎ 이게 크리스마스지.
그리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를 활짝 다 열어놓는데 백스테이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보는 무대 뒤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알 수 있음.
크리스마스 시즌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호두까기 인형 완전 강추.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혼자서 보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혼자서 발레를 본 적이 있는데 (호두까기 말고), 외롭다기 보다는 혼자 오롯이 극에 집중하며 즐길 수 있는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1년 고생한 자신에게 멋진 발레 공연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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