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하고 작년부터 벼르고 있었던 뮤지컬이 있다.
바로 해밀턴.
미국 역사에 관한 내용이라 잘 모르고 사전지식 없이 즐기기도 힘들 것 같아서 그동안 별 관심 없었는데 동생이 명작이라며 혀를 내두르면서 추천추천을 하길래 티켓이 풀리는 날 바로 예매를 했다.
티켓 가격은 한 장당 $160. 택스하고 피 (fee)포함하면 인당 $180정도.
앞 좌석이라 조금 비싼 편이다. 그나마 평일 저녁이라 좀 쌌다 ㅠ
문제는 12월 공연을 너무 앞서 예매를 해놔서 우리 연말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잘 몰랐다.
결과적으로 공연 날짜는 베프의 생일 파티와 시어머님의 방문 사이에 껴버렸고, 연말엔 재택 할 줄 알았는데 슬프게도 거의 풀출근이 되어버려 각자 퇴근 후 따로 출발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기로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현실에 얻어맞기 전까지는.
심지어 평일 저녁 공연. 하... 왜 그랬어 과거의 나.
퇴근 후 근처 지하철역으로 고고. 남편은 비슷한 시간에 회사에서 바로 운전해서 출발.
겨울이라 4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벌써 어둑어둑.
캘리포니아는 지금 우기. 비 안 오는게 어디야 ㅠ
지하철 (바트) 역 앞에 해밀턴 광고 발견!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ㅎㅎ 나 이거 보러 가는데~~ 히히
플랫폼에서도 보이는 해밀턴.
그 옆에 백투더퓨쳐 광고. 이것도 봐야지.
연말이고 본격적인 퇴근시간 전이라 지하철엔 앉을자리가 많았다.
뚜벅이가 된 후로는 바트를 자주 타는데 개인적으로 바트를 좋아한다. 길이 막히지도 않고. 여러 사람들이랑 같이 이동하는 것도 좋다.
가끔 (아주 자주) 지연되는 경우는 있지만.
남편하고는 엠바카데로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탄 에슈비 역에서는 다섯 정거장. 하지만 다리를 건너기 때문에 체감상 바트로만 한 30분 걸리는 듯.
남편몬 발견!
일단 저녁부터 먹으러.
오르페움 극장은 시빅센터역 근처에 있지만 시빅센터가 워낙 위험하고 치안 안 좋기로 악명 높은 마계도시 텐더로인 근처라 거기서 남편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ㅠ
그래서 그나마 덜 위험한 엠바카데로에서 만나기로.
엠바카데로 주변은 금융허브라 큰 회사 빌딩들도 많고 근처에 페리빌딩도 있어서 늘 사람이 많다. 샌프란이니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동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저녁에 돌아다녀도 괜찮은 것 같다.
오랜만에 들린 페리빌딩. 저녁을 여기서 먹었다.
연말 분위기.
오늘의 저녁은 호그 아일랜드에서.
클램차우더와 쉬림프 포보이를 먹었다.
인생 클램차우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재료도 풍성하고 맛있었다.
재방문의사있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굴 껍데기로 리스를 만든듯.
식당 앞에 보이는 베이브리지. 너무 예쁘다.
저녁을 먹고 오르페움으로 향했다.
티켓만큼 중요한 게 주차장!
우리는 늘 그렇듯 스팟 히어로에서 미리 예매를 했다.
주차장 이름은 Trinity Place. 가격은 $30불 정도.
오르페움에서 제일 가까운 주차장.
위험한 지역이라 (특히 밤에) 극장에서 최단거리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픽.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바로 건너편에 오르페움이 보인다.
도착!
한국은 대부분 극장 안에 포토존이 있는데 미국은... ㅠㅠ
그냥 밖에 있는 대형 포스터 앞에서 인증샷으로 만족.
정말 살 거 없는 굿즈샵.
폭리를 취하는 스낵바. 팝콘 한 봉지 $13...
24-25 시즌 공연 리스트 :)
백투더퓨쳐 궁금하다.
우리의 좌석은 E열 103, 105
시야는 이렇다.
너무 앞이라 한눈에 무대가 다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엄청 잘 보임.
무대가 조금 위에 있어 올려봐야 하지만 절대 목이 아픈 정도는 아니다.
아주 만족스러움.
중블이면 2층이나 3층도 괜찮을 듯.
1층 왼쪽이나 오른쪽 사이드는 무대 시야가 굉장히 제한적이라 비추.
- 후기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닌 남편과 달리 나는 미국 역사에 대해서 1도 몰라서 사전준비가 필요했다.
남편의 추천대로 인터넷에서 해밀턴 대본집을 다운받아서 미리 읽어갔다.
읽다 모르는 부분은 나무위키와 위키피디아에서 보충했고,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따로 검색을 해서 조금 더 준비를 했다.
그 외에도 유튜브에서 노래도 몇 개 찾아서 들어보고, 남편은 출퇴근하면서 해밀턴 넘버를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엄청 도움이 됐다.
대사의 대부분이 랩이나 노래로 전달되고 라임과 박자가 엄청 빠르기 때문에 영어가 편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다.
중간중간 랩배틀도 있고 대화도 속사포 랩으로 전달하는 수준이라 진짜 휙휙 지나감.
게다가 네이티브라도 대사의 100%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 배경지식까지 없으면 더욱 극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대본집을 읽고 가면 대사 속 숨어있는 라임도 알 수 있고 디테일을 다 기억은 못 하더라도 각 씬의 큰 줄기와 포인트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즐거운 관극을 할 수 있다.
뭐가 됐든 미리 공부하는 건 강추.
무대는 엄청 화려하지도 소품이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깨알 같은 장치들 (계단, 소품 배치 등)이 자주 바뀌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무대 장치보다 워낙 개개인 배우들의 역량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보니 무대가 화려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사실 배우들 퍼포먼스 보느라 무대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매 씬마다 배우들의 실력에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다들 비단 어마무시한 대사량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감정변화까지 전달하며 다른 배우들과의 완벽한 합을 보여줬다. 게다가 힙합과 R&B의 빠른 박자에 맞게 대사를 랩과 노래를 자유자재로 넘나 든다던가, 춤과 동선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상상하니 정말 탄성과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진짜 종합예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걸 다 한다고?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해밀턴을 맡은 배우지만 개인적으로 끝나고도 계속 기억에 남은 배우는 역시 조지 3세 역을 맡은 신스틸러 배우. 워낙 임팩트가 큰 존재감이라 그의 넘버 "You'll be back"은 유튜브에도 많이 돌아다닌다. 그 외에 라파예트/제퍼슨을 맡은 배우와 해밀턴의 라이벌인 애런 버 역을 맡은 배우와, 해밀턴의 부인 역을 맡은 배우였다.
특히 해밀턴의 부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일본계 배우였는데 파워풀한 보이스에 덩치가 큰 미국 배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아담한 쪼꼬미 귀요미 사이즈에 디즈니 공주 같은 소프트 보이스를 장착한 배우였다 (하지만 2막에서는 엄청난 비트박스 실력을 보여준다!).
처음 등장했을 땐 좀 혼자 튀는 느낌이었는데 2막에선 진짜 와... 왜 여주로 캐스팅이 됐는지 알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포텐을 터트렸다. 완전 기립박수.
마지막으로 실제로는 다 백인인 인물들을 유색인종 배우들로 대부분 캐스팅한 것도 너무 좋았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모두에게 배역이 잘 어울렸다.
7시 반 저녁 공연은 거의 11시가 다 되어 끝났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봄.
이날의 동선.
집에 와서 씻고 잘 준비하니 자정을 훌쩍 넘긴...
다음 날 출근은 내일의 나에게...
해밀턴은 오르페움 극장에서 1월 5일까지 공연한다.
https://www.broadwaysf.com/events/hami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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