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 일상 (A day in the Bay)

2024 땡스기빙 디너 - 2024.11.28

adayinthebay 2024. 12. 11. 09:14

미국에서 땡스기빙(추수감사절)은 아주 큰 명절이다. 🦃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서 가족이라도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땡스기빙 때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오붓하게 모여 식사를 같이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 

 

보기에는 가족중심의 따뜻한 명절 같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제국주의 영토 확장과 원주민들과의 본격적인 전쟁 등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기만 한 공휴일은 아니다.

그래서 땡스기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인식을 심고자 

"해피 땡스기빙" 대신 "해피 할리데이즈"로 대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찌 됐든 땡스기빙은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이며, 그다음 날은 대대적인 쇼핑데이인 블랙 프라이데이, 그리고 주말까지 쭉 이어지는 연휴이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쉬는게 보통인데 

어떤 곳은 일주일 내내 쉬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금요일 또는 주말에 일을 하기도 해서 업종에 따라 차이가 큰 편.

나하고 남편의 경우 목-일까지 쉬었다. 

그리고 땡스기빙 당일인 목요일은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미국 최대 명절날이다.

처음 개시한 크리스마스 카운트다운 캘린더. 🎄

 

사실 미국사람이 아닌 나에게 그동안 땡스기빙은 아무 의미가 없는 날이었다.

대게 혼자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아니면 친구들하고 점심이나 저녁 한 끼 하는 정도였다. 

항상 이 시즌은 공항이 미어터지고 딜레이가 밥 먹듯 일어나기 때문에

연휴여도 어디 여행갈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본 것 같다.

그냥 집에서 쉰 듯. 😅

 

하지만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올해 동생네 부부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고

또 이번에는 부모님께서 우연히 땡스기빙 시즌에 맞춰 놀러 오셔서

이번 땡스기빙은 조금 의미가 컸다. 

조금 더 남들같은 땡스기빙을 보내는 것 같아 무척 설렜다. 🩷 

그래서 동생네와 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땡스기빙 디너를 함께하기로 했다.

전통적인 땡스기빙 디너는 무조건 칠면조와 햄이 들어가지만 🦃

아무리 애를 써도 칠면조 요리는 도무지 입에 맞지가 않아서 과감하게 포기.

대신 한국 명절 음식인 갈비찜으로 대체했다. 🇰🇷

똥손인 나를 대신해 엄마가 갈비찜을 맡았다. 🥲

동생네 부부는 디저트와 와인을 준비해 왔다.

남편은 또 다른 땡스기빙 전통 요리인 스터핑과 피캔파이를 맡았다.

스터핑은 딱딱한 식빵을 큐브로 잘라서 여러 야채와 소스를 넣고 볶은 음식인데

남편이 야심차게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

 

나는 재료를 준비하고 청소와 기타 잡일을 맡았다. 😶

사실 칠면조 외에도 땡스기빙 디너 요리는 엄청 다양하다.

햄, 크랜베리 소스, 그레이비소스, 으깬 감자, 스터핑, 맥엔치즈, 피캔 파이, 각종 구운 야채 등등.

그 많은 요리를 다 할 수 없어서 우리는 그냥 간단하게 갈비찜, 으깬감자, 스터핑, 크랜베리 소스, 샐러드, 그리고 피캔파이로 정했다.

그나마도 으깬감자랑 샐러드는 마트에서 미리 만들어진걸 삼.

 

미국인인 제부가 으깬 감자가 포슬포슬하고 버터리 한 게 너무 맛있다며 칭찬을 하길래

마트에서 산거 데운 거라고 실토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대기업의 맛. 

땡스기빙 전후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하기 때문에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미리 설치하고 미리 준비해 둔 선물도 트리 밑에 배치했다.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오후 5시쯤에 동생네 부부가 오고 6시에는 다 같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동생이 가져온 아르헨티나산 와인을 따고 본격적으로 땡스기빙 디너를 함께 했다. 🍷

두 병 가져왔는데 이 와인이 아빠의 취저였는지 한 병은 그대로 한국으로 들고 감 ㅋㅋㅋㅋ

호스팅 하느라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냥 명절날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뭐 딱히 먹지 않아도, 보고만 있어도 충분히 배부르고 행복했다. 🩷

비록 미국인들처럼 다양한 전통 메뉴를 만들지는 못하고 

우리 식대로 엉성하게 차린 디너였고, 그릇과 컵도 모자라서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에 의자까지 친구네 집에서 빌려왔지만,  

아무렴 어떨까.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낸다는 사실에 마음이 뻐근할 정도로 행복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남편이 만든 피캔파이와 동생이 만든 메디아루나. 

아침부터 둘 다 저거 만드느라 고생했다 ㅠ 

그래서 그런지 엄청 맛있었다. 🥰

단체사진. 📷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남편하고 둘이 남아 청소를 끝내니

밤 10시 반. 샤워하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아침부터 음식하고 디저트 만들고 엄마 아빠까지 숙소에 데려다주느라 남편이 제일 고생이 많았다. 

토닥토닥.

 

혼자 보냈을 때보다는 훨씬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땡스기빙이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감사한 하루.